흥덕 수기책방

참여노인수기<“오늘 점심은 468번지”> - 김익중 참여자

오늘 점심은 468번지


새벽 6:30분, 경쾌하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킵니다. 20-2번 버스를 타려면 이 시간에는 일어나야만 합니다.

현직에서 33년간 근무하다가 퇴직 후 다시 8년 동안 관련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출장도 많이 다녔습니다. 이후 좀 쉬다 보니 무료하고 생활의 리듬이 깨지면서 나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던 중 흥덕 시니어 클럽에서 처음으로 실시하는 서청주 우체국에 파견되어 편지를 분류하는 일이 있어서 지원했습니다.

다행히 선발되어 시니어클럽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었는데 교육받으면서 알게 된 것은 우체부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각자 맡은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아침 일찍부터 분주히 돌아 다니고 오후 늦은 시간 귀가하여 내일 돌릴 우편물을 분류하고 준비하는 것이 바쁘고 힘들어서 어떤 우체부는 그 일로 인해 과로하여 쓰러지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들을 돕기 위해 시니어들이 선발되어 파견된 것인데, 정식명칭은 사회서비스형 『우정과 사랑드림』입니다.

파견된 30명의 시니어는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소형우편물과 대형 우편물을 분류하게 되는데, 나는 오전반 소형우편물을 분류하였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이메일과 SNS로 소통하는 시대에도 소형우편물이 많은 것에 많이 놀랐습니다.

대부분 소형우편물에는 공공기관이나 기업체에서 개인에게 통보되는 고지서나 인터넷으로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우편물이 대부분이고 손으로 쓴 편지들도 많았습니다.

그중에는 교도소로 보내지는 편지도 있는데 대부분은 손 글씨 편지였습니다. 외국에서 외국인 재소자에게 보내지는 편지도 있었고 특히 교도소에 보내지는 편지에는 편지 겉봉투에 사연이 담긴 그림들을 때론 볼펜으로 때론 색연필로 그린 것을 보게 되는데 아마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그림을 통해 무료함을 달래고 다음의 편지를 기다리는 동안 그 그림을 보면서 위안을 얻으라고 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정신없이 분류하다 보면 사회적인 이슈 거리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들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아! 이 사람이 여기 교도소에 있구나’ 하면서 씁쓸한 미소를 짓곤 합니다.

처음에는 서청주 우체국에서 제공한 자료들을 보면서 분류했는데 고개를 들어 상단에 설치해 놓은 우편번호를 보고 분류하다 보면 고개도 아프고 그로 인해 어깨도 쑤시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서청주우체국에서 제공된 동별 우편번호 5자리를 3자리로 줄여서 A4용지로 정리하니 한 장으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몇 번을 수정하고 코팅하여 같이 일하는 시니어들에게 나누어주고 대형 우편물 분류하는 시니어들을 위해 확대해서 벽에 붙여주니 다들 좋다고 하면서 고마워했습니다.

열정적으로 일하다 보니 재미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우편번호 전문가)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김 선생님이 계시는데 퇴근 할 때 김 선생님의 차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김 선생님과는 퇴근하면서도 온통 우편번호 이야기입니다.

어느 음식점이 맛있다고 하면 “아 그곳은 473번 지역인데요” 하면

김 선생님도 소재지를 말씀하시며 맞는다고 하면서 같이 웃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선생님과 퇴근하면서 자동차 번호판을 보고 말했지요

“저 차는 641번이네요. 복대동에 사는 분이겠군요.”

그리고 “저 차는 673번이네요. 그럼 모충동에 사는 분이겠군요.”

김 선생님은 나의 말에 놀라서 “어떻게 그걸 다 아세요?

우편번호 전문가세요?” “아니요. 그냥 우편번호를 외우다 보니까

자동차 번호판도 외워지더라고요.”

김 선생님은 나의 기억력에 감탄하면서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는 우편번호도 잘 못 외우는데 말이죠.”

나는 매일 퇴근할 때 김 선생님의 차를 자주 이용합니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오늘 점심 같이 드실래요? 제가 한 번 쏘겠습니다.”하면

“그럼 어디로 갈까요?”

나는 잠시 생각하고 말합니다.

“음… 468번으로 가볼까요?”

김 선생님은 당황하며 묻습니다.

“468번이요? 그게 어디죠?” 나는 웃으며서

“아, 죄송해요. 제가 우편번호를 말한 거예요.

468번은 흥덕구 사운로에 있는 맛있는 물회 집이에요.”

김 선생님이 웃음을 터뜨립니다.

그날 김 선생님과 나는 우편번호 전문가로서 서로의 공감을 나누며 행복한 점심 식사를 즐겼습니다. 

담당자의 제안으로 청주 흥덕 시니어클럽의 새로운 미션과 비전을 위한 교육에 참여하였습니다. 교육은 총 8회에 걸쳐 하루 3시간씩 진행되는데 오전에 3시간 근무하고, 오후 3시부터 6시까지의 일정입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전문용어들과 이전에 알고 있던 지식을 활용하여 강의를 들었으나 시니어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토론 시간에는 시니어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시니어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직원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의 의견을 제시해 주기도 했습니다. 교육을 마친 후에는 수료증도 받았는데 현직에 있었을 때 받은 수료증보다도 더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황혼기는 자칫하면 우울증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에 쉽게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니어 일에 참여하면서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첫째,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우체국으로 출근하고, 오후에는 다른 활동을 하거나 아내와 함께 정기적인 운동을 하게 되어 부부 사이도 더 돈독해졌습니다.

둘째, 정기적인 수입으로 연금 부족액을 보충할 수 있었고, 매월 받는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손자녀들에게 용돈도 주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셋째, 같은 일자리에 참여하는 다른 시니어들과 함께 국민체조를 하거나 의견교환을 하면서 친밀감과 소속감을 느낀다는 것은 보너스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 한국 사회는 노령화 속도가 어느 때보다도 빨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겪게 되는 어려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년기를 품위 있게 보내고 싶어 합니다. 노인 일자리 참여는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이들을 품위 있게 나이 들어가게 해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가게 해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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