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차가운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던 어느 날이었다. 춥지만 모처럼 따뜻한 칼국수라도 먹을 겸 들른 식당에서 아주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다.
가까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빨리 가야겠다며 일어서는 것이었다. “왜? 무슨 일이 있어?” 라고 묻자 지인은 노인 일자리를 구했는데 오후에 교 육이 있어 빨리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인 나는 “무슨 일이야?”고 묻자 지인은 청주 흥덕 시니어클럽에서 노인일자리 창출을 위하여 참여자를 뽑았는데 자기가 선발되어 교육을 받으러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할 일 없이 집에서 그냥 빈둥거리던 나는 혹시 나도 가능할까하는 생각에 전화를 하였더니 지금은 모두 인원이 찼고, 후보자로 등록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류를 넣고 기다리는데 드디어 내 순서가 왔다는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가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받았다.
청주공항 서포터즈. 아직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며칠 교육을 통하여 내가 해야 할 일을 배정받고 드디어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출근 첫 날, 내가 맡은 구역은 키오스크에서 항공 탑승권을 발급해 주는 일이었다. 키오스크는 자신이 있다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릴 때 한 명 한 명 여권을 받아서 체크인을 하고 다시 탑승권을 발급 받아 나눠주는 일은 왜 이리도 힘든지 가뜩이나 긴장한 몸은 말을 더 안 듣고, 하지만 천천히라도 발급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에 하나씩 하다 보니 긴장도 풀리고 제법하게 되었다. 가장 보람된 것은 키오스크를 잘 모르고, 체크인을 어려워하는 어르신들에게 탑승권을 발급해주었을 때 다가오는 “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라는 말이 그렇게도 좋을 수가 없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별 사람도 다 있었다. 한번은 지나가며 계속 두리번거리길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면서 다가가 말을 걸어보는데 “됐어요.” 하면서 가는데 내 마음 속이 갑자기 새까매졌다. ‘도와준다는데 왜 그러지?’…….
어느 날이다. 갑자기 다른 게이트에서 근무하시는 분이 한 사람을 데리고 오면서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하니까 외국인인데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 차이니스? 니혼징?” 하며 말을 걸어보니 일본인이었다. 대충 아는 일본어로 “무엇을 도와줄까요.”하니 대답하는데 영 모르겠다. 얼른 휴대전화의 일본어 통역 사전을 꺼내어 물어보니 오송역을 가야하는데 어느 버스를 타야하는지 몰라 묻는다는 것이었다. 시내버스 정거장까지 데려다 주면서 이것저것을 물어보니 한국에 친구 한 명과 관광 왔는데 오송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가면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송역까지 가는 시내버스를 안내해주고 운전기사님에게 일본인이라며 오송역에서 내려달라고 해주고 돌아서는데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지면서 하는 일에 대한 기쁨을 느꼈다. 조금 배운 일본어에 나도 모르게 자부심이 생겼다.
또 어느 하루는 역시 같은 게이트에 근무하시는 분이 또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영어다. ‘와, 나에게는 외국인만?’또 통역사전을 꺼내어 무엇을 도와줄까 물어보니 버스카드 한 장과 만 원짜리를 주며 충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옆에 은행이 있는데 잘 못하겠다며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일단 카드를 넣고 충전을 누르니 전화번호를 넣으란다. 얄팍한 영어지식으로 “플리즈 기브미 텔레폰 넘버” 하고 말하자 모른다는 것이었다. 간신히 머물 호텔을 묻고 그 전화번호를 입력하여 카드를 충전해 주었다. 내친 김에 시내버스 타는 곳에서 오송역 가는 버스를 태워주면서 기사님에게 오송역에서 내려주라는 부탁을 하고 왔다. ‘역시 우리 같은 서포터즈가 반드시 필요하겠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얼마 전에 울란바트로에 가는 비행편이 정기노선으로 편성되었는데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뭐라고 말을 하는데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 사전에는 몽골어도 없었다. 손짓발짓을 하며 물어보니 몇 시에 체크인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손가락으로 숫자 7을 만들며 7시에 오픈 한다고 하니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알았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나도 모르게 ‘휴’하는 안심이 되었다. ‘손짓도 말이 되는 군’ㅋㅋㅋ
아직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지금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또 다른 열정을 가질만한 이유를 갖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수많은 모르는 사람들과 탑승권을 끊어주며 나누는 이야기에서 그들의 삶을 보았고, 또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삶들을 보면서 내 삶은 어땠을까 하는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오늘도 퇴근하면서 지는 석양을 바라본다. 우리도 저렇게 지는 나이인데 우리를 위하여 이런 일자리를 나누어 주신 청주 흥덕 시니어클럽, 한국 노인인력 개발원,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와이프가 해줄 맛있는 저녁을 생각하며 신나게 집으로 고고씽…….
지난 1월 차가운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던 어느 날이었다. 춥지만 모처럼 따뜻한 칼국수라도 먹을 겸 들른 식당에서 아주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다.
가까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빨리 가야겠다며 일어서는 것이었다. “왜? 무슨 일이 있어?” 라고 묻자 지인은 노인 일자리를 구했는데 오후에 교 육이 있어 빨리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인 나는 “무슨 일이야?”고 묻자 지인은 청주 흥덕 시니어클럽에서 노인일자리 창출을 위하여 참여자를 뽑았는데 자기가 선발되어 교육을 받으러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할 일 없이 집에서 그냥 빈둥거리던 나는 혹시 나도 가능할까하는 생각에 전화를 하였더니 지금은 모두 인원이 찼고, 후보자로 등록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류를 넣고 기다리는데 드디어 내 순서가 왔다는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가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받았다.
청주공항 서포터즈. 아직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며칠 교육을 통하여 내가 해야 할 일을 배정받고 드디어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출근 첫 날, 내가 맡은 구역은 키오스크에서 항공 탑승권을 발급해 주는 일이었다. 키오스크는 자신이 있다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릴 때 한 명 한 명 여권을 받아서 체크인을 하고 다시 탑승권을 발급 받아 나눠주는 일은 왜 이리도 힘든지 가뜩이나 긴장한 몸은 말을 더 안 듣고, 하지만 천천히라도 발급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에 하나씩 하다 보니 긴장도 풀리고 제법하게 되었다. 가장 보람된 것은 키오스크를 잘 모르고, 체크인을 어려워하는 어르신들에게 탑승권을 발급해주었을 때 다가오는 “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라는 말이 그렇게도 좋을 수가 없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별 사람도 다 있었다. 한번은 지나가며 계속 두리번거리길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면서 다가가 말을 걸어보는데 “됐어요.” 하면서 가는데 내 마음 속이 갑자기 새까매졌다. ‘도와준다는데 왜 그러지?’…….
어느 날이다. 갑자기 다른 게이트에서 근무하시는 분이 한 사람을 데리고 오면서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하니까 외국인인데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 차이니스? 니혼징?” 하며 말을 걸어보니 일본인이었다. 대충 아는 일본어로 “무엇을 도와줄까요.”하니 대답하는데 영 모르겠다. 얼른 휴대전화의 일본어 통역 사전을 꺼내어 물어보니 오송역을 가야하는데 어느 버스를 타야하는지 몰라 묻는다는 것이었다. 시내버스 정거장까지 데려다 주면서 이것저것을 물어보니 한국에 친구 한 명과 관광 왔는데 오송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가면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송역까지 가는 시내버스를 안내해주고 운전기사님에게 일본인이라며 오송역에서 내려달라고 해주고 돌아서는데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지면서 하는 일에 대한 기쁨을 느꼈다. 조금 배운 일본어에 나도 모르게 자부심이 생겼다.
또 어느 하루는 역시 같은 게이트에 근무하시는 분이 또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영어다. ‘와, 나에게는 외국인만?’또 통역사전을 꺼내어 무엇을 도와줄까 물어보니 버스카드 한 장과 만 원짜리를 주며 충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옆에 은행이 있는데 잘 못하겠다며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일단 카드를 넣고 충전을 누르니 전화번호를 넣으란다. 얄팍한 영어지식으로 “플리즈 기브미 텔레폰 넘버” 하고 말하자 모른다는 것이었다. 간신히 머물 호텔을 묻고 그 전화번호를 입력하여 카드를 충전해 주었다. 내친 김에 시내버스 타는 곳에서 오송역 가는 버스를 태워주면서 기사님에게 오송역에서 내려주라는 부탁을 하고 왔다. ‘역시 우리 같은 서포터즈가 반드시 필요하겠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얼마 전에 울란바트로에 가는 비행편이 정기노선으로 편성되었는데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뭐라고 말을 하는데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 사전에는 몽골어도 없었다. 손짓발짓을 하며 물어보니 몇 시에 체크인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손가락으로 숫자 7을 만들며 7시에 오픈 한다고 하니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알았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나도 모르게 ‘휴’하는 안심이 되었다. ‘손짓도 말이 되는 군’ㅋㅋㅋ
아직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지금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또 다른 열정을 가질만한 이유를 갖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수많은 모르는 사람들과 탑승권을 끊어주며 나누는 이야기에서 그들의 삶을 보았고, 또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삶들을 보면서 내 삶은 어땠을까 하는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오늘도 퇴근하면서 지는 석양을 바라본다. 우리도 저렇게 지는 나이인데 우리를 위하여 이런 일자리를 나누어 주신 청주 흥덕 시니어클럽, 한국 노인인력 개발원,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와이프가 해줄 맛있는 저녁을 생각하며 신나게 집으로 고고씽…….